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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이어리

[스물 다섯, 홀로서기] 내가 즐겁다고 느껴지는 것들만이 나를 즐겁게 할 수 있음을

20대 초반에는, 스스로를 통제해왔다.

무언가를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, 쉬지 않고 나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.

그로 인해 헤르미온느라는 별명이 생길 만큼 바삐 살았다.

매사 인정받고 싶었고, 조금이라도 후회할 선택을 단 하나라도 하고 싶지 않았다. 그 때는 그런 나의 모습이 좋았다. 너무나 뿌듯했다.

하지만 무언가모를 갑갑함이 있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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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대 중반에 접어든 요즘, 요즘은 어느정도 삶이 안정되어졌다.

삶이 안정적이라고 느껴지면서, 조금씩 '갑갑함'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.

골똘히 생각해본 결과, 지금껏 나는 타인에게 선택을 맡겨왔던 것 같다. 

 

하고 싶었던 타투도, 타인이 '후회 할 수 있다', '나중에 누가 보고 너를 이상하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' 라고 설득하여 하지 않았고,

하다못해 옷사는 것도 원하는 옷을 사 본 적이 많이 없었다.(안목이 좋다는 평을 받지는 않아왔어서, 타인의 안목에 의존했다.)

또, 혼자 여행의 경우, '겁이 많은 애가 혼자 어떻게 자려고 그러냐', '요즘 세상 무섭다', '내가 가보니 재미 없더라' 라는 말에, 말 그대로 쫄아서 마음을 접었었다.

 

나는 이게 '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서 여러 의견을 받는 것' 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것 같다, 사실은 내 선택에 대한 후회와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던 거다. 그리고 그로 인해 해왔던 선택들은 다행히도 후회하는 상황이 거의 없었지만, 말 할 수 없는 갑갑함이 차올랐다.

 

그렇다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없었거나 줏대가 없었던 것이냐에 대한 질문에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 할 수 있겠다. 항상 마음 속 강하게 피어올랐던 의지와 줏대를 이성이 꺾는 느낌이었다. 그러니 더 답답했던 것 같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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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학교 때 만난 친구들은 내게 '옛날의 너는 죽었다' 라고 말한다. 나는 당당했고, 하고 싶은 걸 분명히 말 할 줄 알았고, 하고 싶은 건 꼭 했고, 싫은 건 하지 않았다. 원래의 나는 그랬다.

하지만 이상향에 가까워지기 위해서, 스스로를 (내 그릇 대비 많이) 옭아매었다. 결론적으로는 이뤄 낸 성과들이 있었지만(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살고 싶었지만), 이제는 조금은 다른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내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.

 

그래서, 지금부터라도 나는 나를 더 알아가고 싶다. 올해 그리고 내년동안, 그런 강박적 생각들을 내려놓고, 진정한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진정한 나에 대해서 찾아나가야겠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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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만의 보폭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나아가도, 내가 나를 사랑하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으며, 빛나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 하루다.